크리스 베일리의 저서 <그들이 어떻게 해내는지 나는 안다>에는 숫자 3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가 등장한다.
세 가지는 아무렇게나 집어 든 숫자로 보일 수도 있지만 수행하고자 하는 중대한 업무를 포괄할 만큼 충분히 많으면서, 중요한 사안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적은 수다. 세 가지는 일을 보다 슬기롭게 해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성취하고자 하는 일을 결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지 않을 일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3의 원칙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치우는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는가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생산성의 원리와도 훌륭하게 접목돼 있다.
사람들이 세 가지를 생각하기 좋아한다는 근거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마이어에 따르면 "세 가지 성취가 효과적인 가장 단순한 이유는 태초부터 인간의 뇌가 세 가지를 생각하도록 훈련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는 군인들에게 생존 정보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3을 이용한다. 공기 없이 3분을 버틸 수 있고, 물 없이는 3일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는 3주 동안 생존할 수 있다".
주위를 살펴보라. 3이라는 숫자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곰 세 마리와 세 마리 눈먼 쥐, 아기 돼지 삼형제와 삼총사는 또 어떤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피와 땀과 눈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또 금메달과 은메달과 동메달이라는 예도 있다. 그리스도교의 세 가지 덕인 믿음, 소망,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의 사고는 세 가지를 근간으로 생각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 밖에도 당장 떠오르는 숫자 3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여전히 세상에 많다. 가위, 바위, 보, 한국인이 좋아하는 삼세판, 국가 기관도 삼권 분립, 빨간불, 노란불, 파란불 등등. 생각해보면 우리는 수많은 3이라는 개념에 유독 둘러 쌓여 있다.
베일리의 주장을 찬찬히 따라가면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숫자 3. 모든 3 위에 존재하는 ultimate 3. 최종 보스 격 3. 삼위일체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성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한 하나님이시지만, 그 안에 세 가지의 위격을 가지고 있어 그는 하나님이며,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이다) 종교는 기독교뿐이다.
이 이상한 우연 같지만 우연같지 않은 연관성이 흥미를 유발한다. 물론 신자의 입장에서는 퍽 당연한 결과다.
로마서 1장 20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그의 속성,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 분명히 나타나서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은 불완전한 인간과 다르기에, 매사를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로마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 그분께서 "의도적"으로 당신의 특성과 신성을 나타나도록 만드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사실이 모든 정황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하고, 장인의 작품에 장인의 특성이 나타타는 것 역시 자명한 일이다.
인간의 정신은 어쩌면 무의식적인 3에 대한 동경과 추구 혹은 익숙함에서 오는 재해석과 재창조를 통해 창조자의 지문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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