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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신학

3차원에 갇힌 생각

by 4christ 2021. 9. 2.

예수님은 요한복음 16:33 절에서 ". . .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고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셨다. 

 

보통 이 구절에서는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은 크리스천의 필연적인 사실"이라는 점에 더 주목한다.

 

때때로 간과되는 신기한 것은, 아직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죗값을 치르시고 부활하시기 전임에도 완료형 동사를 사용해 "세상을 이겼다"라고 선언하셨다는 점이다. 곧 할 일이지만, 이미 이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숙제를 하지도 않았는데, 파워 포즈와 함께 난 이미 숙제를 마쳤다! 당당하게 선포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넘어 돌아오는 것은 엄마의 등짝 스매싱일 뿐일 것이다. 인간의 개념으로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에 완료형 동사를 쓴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지극히 3차원적인 발상이다.

 

3차원의 특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 세계 안에 갇혀 있는 존재이기에 그 밖의 것을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거나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뜬구름 잡기일 수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3차원을 넘어서는 순간 가장 크게 경험하게 될 특징 중 하나는 시공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 시점부터는 우리가 보기에는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 상식이 되기 시작한다.

 

본절에서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처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가 3차원에 국한된 인물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삼위일체도 이러한 부분 중 하나다. 어떻게 한 하나님이 동시에 세 가지 다른 위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가. 완벽한 사자이면서 완벽한 원숭이면서 완벽한 도마뱀이지만 그 셋은 완벽한 곰일 수 있는가? 3차원에서는 불가하다. 또 어떻게 이곳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는 무소 부재함이 가능한 것인가? 순간이동도 결국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 하나, 한 장소에 동시에 두 번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3차원에 갇힌 사람의 상상력일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곳에도 계시고 저곳에도 계시며 우주의 끝점에도 가 서계실 수 있다. 성경이 설명하는 그분의 모든 특성들은 일관되게 하나님께서 이미 시공간을 넘어서 계심을 보여준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이 발전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상식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설명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언행에서조차 예수는 강력하게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셨지만, 인간은 아둔하여,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가 하며 바리새인처럼 제 한계를 드러내기 바빴다. 늘 돌이켜보며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인간이며, 3차원에 갇혀서 제한된 지성을 지닌 존재임에도 자신감 넘치게 지껄이며 세상 교만한 것이 또 인간이다. 인간을 고집스럽고 멍청한 양에 빗대어 말씀하신 점은 아무리 봐도 찰떡이다. 송민국 어린이의 말처럼 "아무개야 겸손 좀 해주겠니?"라고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다.    

 

때때로 괴로워 몸부림치는 현재 속에서 앞날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는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시공간 밖에서 내 지금과 그분의 뜻대로 합하여 선을 이루게 될 미래를 "동시에" 보고 계신다. 그렇기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미래의 약속은 그분에게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재만큼이나 확실하다. 사실 우리에게도 그 미래는 확실하다. 단지 시공간에 갇혀 그분만큼 명확하게 보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러기에 때 때로 레마와 로고스로 찾아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재의 삶 속에 찾아와 승리를 약속하신다면, 그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그 유능한 인격체의 약속 위에 올라 마음을 안식하며 쉬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다. 본질은 늘 그렇듯 복잡하지 않다.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고 계신 그분의 약속의 그늘 아래 들어가 배짱을 부리며 마음의 쉼을 누리고 살다 가는 것이 창조된 인간에게 꼭 맞는 삶이다.  

 

내 삶의 마침표는 이미 찍혔고, 어쨌든 하나님은 세상을 이기셨다. 남은 것은 그 도착지까지 어떤 식으로 종국에 다다르게 될지를 호기심 어린 그러나 담대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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