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육학자인 마석한은 그의 저서 <나의 역사 인문학>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권력은 그 속성상 소수에게 모이는 경향이 강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지배자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권력을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권력의 집중은 문자의 독점으로 이어집니다. 지식이 바로 권력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역사상 소수 권력층은 문자를 모두에게 개방하려 하지 않았고, 대중의 문자 생활을 지속적이고도 교묘하게 때로는 무력으로까지 간섭하면서 자신들의 전유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는 소수의 권력층이 지식과 정보를 통제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최근까지 유신, 군사정권이 보여준 문화/사상의 제한과 검열이 있었고, 가깝게는 이웃나라 중국의 진시황 "분서갱유"사건과, 마오쩌뚱의 "문화 대혁명"이 있다. 소수의 지배 구성원은 다수가 지식과 정보를 그들과 공유하기를 꺼려한다. 무지는 통제력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직도 대충에게는 배일속에 가려진, 개인의 이익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감춰진 비합리적이고 냄새나는 정보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역사 속에서 그려진 폭압적인 형태와 완벽한 통제력으로서의 정보와 지식독점은 불가능해졌다. 자생적이고 무작위적으로 예측 불가능하게 발전하는 인터넷의 유기적인 속성 때문일 것이다.
이제 지식은 더이상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 예전처럼 돈, 집안 환경, 학력, 및 물리적인 제한들에 따라 그 질과 양에서 시작점이 다르지도 않다. 인터넷은 의도치 않았던 지식의 평등을 급속도로 이뤄 내고 있다.
미국은 퍽 오래전부터 온라인상에 무료 도서대여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 도서관과 Kahle-Austin 제단의 펀딩으로 2008년에 시작된 온라인 "Open Library" 서비스만 봐도 이미 2021년 기준 2천만 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 밖에도 6만 권을 소장한 "Project Gutenburg"를 비롯해 수많은 온라인 서비스들이 진행중이다. 1 2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모든 지식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모토를 위시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인터넷의 공간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이 곳이 "Internet Archive"와 "Z-library"일 것이다. 이 두 사이트의 보유 저서만 포함해도, 미국 3대 도서관인 Library of Congress와 하버드 대학 도서관을 넘어선다. 수차례 출판사, 작가협회 등에서 소송을 걸며 movement를 저지하려고 하지만 어딘가 역부족인 상황이다 (Internet Archive와 같은 경우, 개인이 소장하는 형태가 아닌 온라인에서 시간제한을 두고 대여하는 형태로 책들이 제공되기 때문에 일전의 도서관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3학술논문계에는 Sci-Hub와 각기 다른 무료 학술논문검색 사이트들이 있고,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도 모든 학술 지식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ebook 도서관의 형태로 전국 모든 온라인 지역 도서관을 통해 다양한 양서들을 언제든 편하게 온라인 상으로 대출할 수 있다. 충분한 학술 논문 및 저서들이 RISS 같은 플랫폼을 통해 역시 무료로 제공되고 있기도 하다.
위에 나열한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 그 위에 얹어, 이미 다수가 알고 있는 Youtube 영상, 블로그, 개인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셀 수 없는 최신 정보들이 또 남아있다 (물론 이러한 정보들은 "Peer-Review"나 출판사의 검증을 받지 않은 경우가 많아 분별이 필요하다. 하지만 분별력만 있다면 이러한 플랫폼들도 여전히 양질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제는 자원의 한계 때문에, 타고난 슬프고 안타까운 집안 배경 때문에, 이 시골 촌구석에 살기 때문에 학습할 수 없다는 것은 완전한 핑계가 돼버렸다. 학습의 열망이 큰 이들에게 21세기는 가히 유토피아적인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다. 돈 한 푼 들지 않고 지식을 향유할 수 있다. 그것도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핸드폰으로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말이다. 이런 것이 혁명 (revolution)이 아니라면 무엇이 혁명이겠는가. 이 정도 규모의 다수에게, 무료로, 이렇게 많은 양의 정보가 평등하게 무엇보다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제공된 적은 인류 역사에 처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최소한 지식에 있어서는 더 이상 미래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는 존재하지 않을 듯하다.
지식 습득의 그 시작점이 평등해지면서, 이제는 예전보다 더 기하급수적으로 예상치 못한 배경과 환경에서 다양한 성공과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며, 더 이상 학벌과 타이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실력에 기반해 삶을 영위하고 땅을 개척해 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될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물론 학벌과 타이틀이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태생이 특수한 대접을 받고 특수한 집단에 소속되어 안정감을 누림을 즐겨하는 유치한 존재들이니까).
인간의 역사는 여전히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에 가깝지만, 지식의 평등을 이뤄내고 있는 이 소리 없는 인간 역사의 한 지점은 가히 유토피아적이라 할 만큼 달콤하고 이상적이며 아름답다.
'공부 및 대학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처는? 근거는? (0) | 2022.09.24 |
---|---|
[가지 않는 길]박사학위의 유익 (1) | 2021.10.26 |
D-1 (0) | 2021.09.23 |
박사논문(PhD Dissertation) 디펜스 4.5일전.. (0) | 2021.09.20 |
호모 도센스 (0) | 2021.09.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