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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예측은 이제 안하고 살란다

by 4christ 2022. 6. 26.

나이를 먹으면 계획대로 안된다는 걸 잘 알게 된다. 이뤄야 한다는 치기 어린 열정이나 굳건함이 유연함으로 바뀌어 간다. 하나님이 길을 여신 다는 정황을 따라왔다가도,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한다. 미리 결론을 내버린 좁은 시야 탓일 것이다. 어리둥절하면서 터벅터벅 걷는 게 사는 것 같다.

 

2년 전 새해. 앞으로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은 모두 틀렸다. 코로나는 계획에 없었다. 눈 문제도 예상 못했다. 상황에 떠밀려 캐나다에 넘어와야 할 줄 몰랐다. 오고 나서야 내 논문 주제는 미국을 떠나서는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박사를 그만둘까를 고민했다. 뒤척이던 그 밤에 또 몰랐던 것은 처한 상황이 전화위복을 위한 새길이었다는 것이다. 지역 자료에 의존이 불가능해, 미국 전역에 1차 자료를 정말 긁어모은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모아냈다. 미국에 있었다면 그저 그런 자료로 채웠을지도 모를 논문이, 학계에 없는 새 자료들이 주를 이룬 논문이 되었다. 최종 디펜스에서는 교수님께 제자 중에 가장 심도 있게 연구된 박사 논문이었다는 기대치도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포기했으면 어쩔 뻔했는가. 계속 모르고 또 모른다.

 

졸업 즈음 미국에서 사역 제의를 받았다. 캐나다에서도 색다른 제안을 받았다. 난 당연히 미국에 남을 거라 예상했다. 솔직히 캐나다 사역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또 틀렸다. 미국에서 종교비자와 OPT를 한참 알아보다가 몇 주 만에 모두 정리하고 캐나다로 올라왔다. 오자마자 코로나에 걸렸다. 가족이 유일하게 쉬는 1월을 함께 앓다가 날릴 거라고 예상 못했다.

 

캐나다 사역을 위해 밴쿠버에 답사를 다녀오고, 필요한 서류 절차를 준비하는 퍽 분주한 몇 달을 보냈다. 최종 인터뷰를 며칠 앞두고 2년간 안정적이던 눈에 또 문제가 생겼다. 계획이 무산되었고, 잠정적으로 인터뷰는 연기되었다 (무슨 이런 타이밍이 있을까).

 

벌써 두 달 전이다. 두 달간 병원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요즘이다. 이제는 이 컨디션으로 캐나다 사역 자체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마저 든다. 사실 그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통역일도 시작한 것인데. 요즘은 불확실한 채로 애매하게 통역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건강이 도와주지 않는데 어떤 일을 도모하고 계획할 수 있을까.

 

와중, 기억에서 잊혀있던 월드비전 교회관계 협력 고문 자리 서류심사가 통과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지원자가 600명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안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또또또 예상은 틀렸다. 마침 병원 검진을 위해 일을 뺐던 하루, 두 번째 영상 인터뷰를 찍어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 마음이 흔들흔들 불확실하던 찰나라 그랬을까. 어차피 안될 테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나 보자, 원테이크로 후루룩 말아 보냈다. 두 번째 인터뷰도 합격해버렸다. 어어어~ 이러면서 어제 어영부영 최종 인터뷰까지 봤다.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난 2년처럼 잘 모르겠다. 전자는 고생바가지 예약이지만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이고, 후자는 안정적이고 새로운 일이다. 꼴에 주의 종이라고, 어려운 길을 고집하고 싶지만. 이제는 뭐가 주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잘 모르겠다. 왜 굳이 최종 인터뷰를 앞두고 그렇게 짠 듯이 막으시는 듯이 좌절을 주셨을까 싶으니. 중심이 흔들흔들한다. 그럼 미국에서 그렇게 확신을 주셔서 원치도 않는 길을 다 정리하고 오게 하신 이유는 무언가. 늘 그랬듯이 내가 뭘 알겠는가.

 

하나님이 숨기시면 알 길이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앞으로의 2년도 추측하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전부 틀릴 것이고. 듣도 보도 못한 곳에 서 있을 테니까.

 

#대충이렇게살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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