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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결혼은 해치우는 것이 아니다

by 4christ 2021. 8. 19.

30대 중후반 어디 즈음.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가 지나고 있다. 거주 국가에 따라, 아직 늦지 않았을 수도, 너무 늦어버렸을 수도 있는 나이다. 주변에서 다른 나이 때보다 걱정을 더 많이 듣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서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 시기 이기도 하다.

 

유독 동양 문화권은 "결혼 적령기"를 강조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믿고, 그때가 모두에게 동일하다고 믿는다. 말은 그렇게 안 해도, 결국 생각은 그런 듯하다. 그 기본 범주에서 벗어나면 불안해하고, 실패의 큰 가능성을 점친다.  

 

하지만 결혼은 그 맞는지도 모르는 전통적인 시각에 의해서 해치우듯이 끝내버려야 할 일이 아니다. 결혼의 때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된 주장은, 적령기를 놓치면 더 이상 만날 사람이 없어서 손해 보는 결혼 혹은 맘에 드는 상대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결혼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특정 카테고리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럴 수 있다. 연봉은 얼마여야 하고, 외적인 조건은 이래야 하고 하는 물질적인 가치들만으로 배우자가 결정 난다면 확률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의 영역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학창 시절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주변에 모여있는 우리 반 이성에게 끌리기만 했던가? 내가 짝사랑했던 이는 도리어 몇 층을 내려가야만 만날 수 있는 그녀였던 경우도 퍽 많다. 몇 명 모여있지도 않았던 작은 공동체에서 만난 그녀가 수백수천의 사람들을 뚫고 내 마음에 닿았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논리대로 내 주변에 만남의 수가 많은 만큼 기회가 더 올라가고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느 바보가 장거리 연애를 하겠는가? 조건은 정말 볼품없는데. 이상하게 끌리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평상시에 나이차는 이 정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도, 그 모든 틀을 깨버리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결혼 정보업체에 등록한 사람은 확률적으로는 누구보다 결혼의 확률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조건 추려가며 만난 사람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사람의 마음과 취향이라는 것은 통계와 확률을 따르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복잡다단하고 무엇보다 개개인은 독특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많은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결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단순하게 예쁘고 잘생기고 돈 많고 학벌 좋은 사람만 찾아 결혼할 거라면, 그들 말을 듣는 게 일부분 맞을 것이다. 그런 걸 노리는 사람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빨리 선점하는 게 확률적으로 유리한 것이 맞다.     

 

해치우듯이 결혼을 해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무언가 서두르면 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협상가들, 세일즈맨들 및 범죄자들이 오랜 역사를 두고 써왔던 전략 중 하나가 상대로 하여금 판단을 서두르게 하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큰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위협과 함께 조급함을 느낀다. 홈쇼핑에서 매진 임박을 많이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판단을 흐리게 해서 일단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것이다" 만큼 사람의 판단을 흐리는 것도 없다. 홈쇼핑에서 사놓은 물건 중에 몇 번 쓰지 않고 구석에서 먼지를 차곡차곡 쌓고 있는 아이템들이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본다면, 이런 환경이 얼마나 인간의 판단을 흐리는지 알 수 있다.  

 

집을 사고, 차를 사는 것도 적게는 몇 달 많게는 몇 년을 찾아보고 고민하면서, 결혼을 이렇게 매진 임박의 압박에 서둘러하게 되면. 분명 후회가 따른다. 상대의 가치관, 상대의 특성, 상대와 나의 캐미스트리, 상대와 나에게 보이는 앞으로의 문제의 가능성들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한다. 그렇게 고대하고 바라던 결혼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딘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굴 탓하겠는가? 그 호들갑스러운 분위기를 내던 사람들은 전부 사라지고, 이제 평생 결혼 속에서 "살아내야"하는 사람은 나일뿐이다. 모든 서두름은 운이 좋다면 다행스럽게 잘 넘어가기도 하겠지만, 사고를 크게 터트리는 주범이다. 매사 침착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에 결혼도 예외가 아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결혼은 내가 하는 것이지 타인이 해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해진 때에 급하게 떠밀려 결혼을 결정하게 되면 주변에서 내가 해야 할 판단을 "대신" 해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들은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일차원적인 자기 생각을 투영시키거나, 작은 일들은 묵과해버리는 수가 많다. 물론 나는 내가 판단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언이라는 미명 하에 좋은 남자, 좋은 여자는 이런 사람이다 나열한다. "내가 봤을 때 좋은 사람은 이 사람인데, 너는 지금 그 사람을 잡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라고 종용한다. 그 초대하지도 않은 압박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너는 눈이 지나치게 높아" "그렇게 하면 넌 평생 결혼 못할 거야" "넌 사람이 왜 그리 까다롭니"라는 말과 함께 상대의 안목과 판단 그리고 자세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방식을 더 강압적으로 강요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회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마음이 여리고 자존감이 낮거나 심지가 굳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런 말들과 압박에 휘둘려 그들의 안목을 믿고 결혼하게 되는 수가 많다. 하지만 이 또한 서둘러 결혼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좋은 가치가 나에게 좋은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잔인하게 "결혼은 원래 다 그런 거야" "누구나 그렇게 살아 유난 떨지 마"라는 폭언으로 답할 뿐이다. 결국 그들에게 휘둘린 주체는 나이기에, 근본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어딘가 당한듯한 기분은 지울 수 없게 된다. 

 

사회적인 압박, 지인의 압박, 가족의 압박 그것이 누구에게서 온 압박이건 세상의 모든 압박전술은 상대의 판단을 흐리고 당황하게 해서 실수를 하게 함이 목적이다.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은 좋은 의도와 걱정으로 그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압박을 받고 있는 당사자가 본인이라면, 압박에서 한발 물러나 명료하게 판단하려 애쓸 필요가 있다. 모든 압박은 실수를 유발한다. 

 

물론 완벽한 결혼은 없다. 아무리 고민하고 신중하게 판단했어도 "파이"인 경우도 있다. 내가 완벽하지 않듯이 상대도 완벽할 수 없고, 모든 결혼 관계는 그것이 길던 짧던 충돌과 어려움이 있다. 또한 상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결혼식 직후까지도 자신의 패를 숨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만나 결혼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옳을 순 없다. 어차피 늦었고, 이러다 영원히 혼자 살게 될까 봐, 그냥 대충 뭐 괜찮겠지 하고 맘에도 크게 없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혼기라는 맞는지도 틀린지도 모르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휘둘려 반평생을 후회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임을 기억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다들 그렇게 생각해왔어. 그게 틀렸다면 사람들이, 이 사회가 이제까지 그런 생각을 고수했겠어?"라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틀린 경우가 많다. 전통은 옳기 때문에 유지되는 게 아니라, 익숙한 것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각자의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 가치, 취향, 스타일이 다르다. 누군가는 빠르게 판단하며, 해치우듯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시행착오를 거쳐서 온전한 판단에 이루는 사람도 있다. 눈이 높아 결혼하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혹은 단순히 아직 내 짝을 만나지 못해 결혼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누군가 맞다고 할 수 없다.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부분에서도 늘 평균과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뿐이다.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판단은 실패할 것이다" 라고 규정짓는 것은 상당한 일반화일 뿐이다. 이는 전체주의와 묘하게 유사성을 보이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결혼은 적령기에 서둘러 해치워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각자의 처지에 맞게, 각자의 때에, 내가 확신이 드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서둘러, 사회적인 압박에 못 이겨, To-Do 리스트에 체크하듯이 한 결혼이 차라리 독신으로 사는 것보다 행복할 것이라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일단 결혼만 하면 안심이라는 상당히 위험한 전제를 깔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혼기에 가뜩이나 불안한 청춘남녀의 결혼을 부추기고 있다. 

 

결혼뿐 아니라, 매사 중심을 지키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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