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이라는 껍데기 속 각자의 알맹이는 천차만별이다. 같은 재질, 같은 모양의 상자 속에 담겨 있지만 무게가 모두 다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사회 문화적으로 개인에 대한 강조가 극대화되었다. 새롭게 주어진 세계관이 본성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니 이기심이 이때다 싶어 춤사위 한판을 크게 벌이고 있다. 개인주의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가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분명 사랑을 논하기는 하는데 사랑이 없다.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글이나 대화를 살펴보면 늘 "이런 남자를 만나라," "이런 여자를 만나라" 같은 말들 뿐이다. 점잔을 빼는 경우,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껍질을 벗겨보면 추구하는 종착점은 비슷하다. 현대 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말하는 사랑에는, 사랑의 본질이 빠져있다. 사랑은 맞을 수 있겠다, 단지 자아 사랑일 뿐.
사랑의 본질은 이타성이다. 순수한 사랑일수록 자아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 상대로 가득 차기 때문에 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 순전한 사랑의 본질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사랑을 감지하고, 동경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문화를 초월해서 친구를 위해, 타인을 위해, 자녀를 위해, 약자를 위해, 조건과 상황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내어주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가. 순수한 사랑의 본질이 이타성이 아니라면, 자기만 아는 매국노 같은 사람을 손가락질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그도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는데 말이다.
분명 사랑을 말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은 외모가 적당히 흠모할만해야 하고, 배려심이 깊어야 하고, 연봉은 어느 정도 이상이어야 하며, 인내심이 많아야 하고, 가족들에게 잘해야 하고, 센스가 있어야 하며 등등의 수많은 꼬리표가 붙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이건 나를 사랑하는 거 아닌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줄 이를 찾는 것뿐이다. 솔직해지자.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대가 필요한 것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조건이 붙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 어떤 부유물 없는 완벽한 자기희생적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은 불가하다. 하지만, 최소한 불순물 들어있는 부족한 사랑을 하면서, 순전한 사랑인 양 연기는 하지 말자. 자신의 약점과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 드는 이기심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조금은 더 올바른 쪽으로 고쳐내고자 하는 순수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이자. 지금은 좀 이기적인지 몰라도, 앞으로 조금씩 더 덜 이기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려 힘써보자.
최소한 그런 인생은 조각난 화분처럼 삐뚤거리고 볼품없어 보일지는 몰라도, 거짓의 악취가 나진 않는다. 연약하지만 악취 없는 인생을 우리는 인간미 있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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