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위는 표면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 모든 행동의 드러나는 표상이 내적 동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 매매가 이루어 지고 있던 책걸상을 뒤엎으시는 행동은, 일부분 이해는 가지만, 너무 감정적인 반응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현상일 뿐, 예수의 깊은 내적 동기를 드러내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는 단순히 매매가 행해짐으로 분노하신 것이 아니다. 장사하고 사업으로 이익을 취하는 게 악하다는 말씀이 아니다. 예수의 행동 이면에는 다른 악한 동기와의 충돌이 있다.
에수의 행동은 당시 성전 기득권자들 즉 제사장들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존 칼빈은 성전에서의 매매 행동이 제사장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상인들은 이곳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상당한 자릿세를 내야 했는데, 그 자릿세의 일부분이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도록 구조화되어 있었다.
상인과 제사장들은 이익관계로 부당하고 지저분하게 묶여 있게 되었다. 받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상인들의 뒤를 봐주었고, 그로 인해 상인들은 맘껏 이기심을 부풀려 활개를 쳤다.
마치 휴가철 피서지 가게들이 그리하듯, 말도 안 되는 폭리로 이익을 취했다. 또한 흠이 없는 제물이라며 흠이 있는 제물을 속여 팔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집에서 가져온 제물들은 문제가 있다 시비를 걸기도 하였다.
속죄제물을을 다른 나라 돈으로 구매하는 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그곳에는 환전소도 있었는데, 이곳에도 구린 구석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헬라 돈을 성전 화폐로 바꿔야 했는데, 이때도 어느 정도의 성전세를 지불했어야 했다. 환전에 관련한 성전세도 “역시” 제사장들 주머니로 들어갔다.
어렸을 때는 성경을 읽으면서, "예배당에서 장사를 해서 이익을 취하니까 나빴네~" 정도로 그쳤지만 사실 예수님의 더 큰 분노의 대상은 제사장들의 이기심과 더러운 외식이었다. (장사치들도 잘못을 했지만 원래 알만한 사람이 잘못하면 더 뚜드려 맞는 것이다. 제사장의 이기심이 더 그 죄질이 나빴을 거라 보인다.)
사역자들이 맨땅에서 돈 파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모두가 그렇듯 자신의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 조용하고 성실하게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것은 귀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영육 혼의 집합체로 지으셨다. 육적인 필요를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책임짐을 받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애초부터 십일조 제도를 만드셔서 그 제사장들을 먹이고 입히셨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에서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그것에 더해 욕심을 교묘하게 거룩의 포장지로 싸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다.
성전 매매를 통해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자신의 이익과 야망의 도구로 쓰는 악한 마음을 보셨다. 그러면서도 아닌 척 밖에서는 짐짓 거룩한 척, 세상을 초월한 척하는 더러운 외식에 분노하실 수밖에 없었다.
요즘도 수염을 기르고, 제사장의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는다 뿐이지, 하나님의 교회와 그분의 일을 자신의 야망의 도구로, 이기심의 도구로, 개인 수익의 도구 따위로 부리는 사역자들이 있다. 당연히 말로는 그리 하지 않을 것이다. 외식의 포장지로 둘둘 감았기 때문에.
내적 동기는 본인들만 안다. 외부에서 언뜻언뜻 비추는 삶의 열매, 그 그림자로 타자들이 어수룩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악한 동기와 외식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셨는지 기억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제 마음을 꾸준히 살펴야 한다. 사역자뿐아니라, 하나님 나라 운운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왕국과 이익을 채우는 이들에게도 이 주의함은 동일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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