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및 대학원

박사 논문과정 잡다한 생각 (1)

4christ 2021. 3. 28. 23:46

9-5. 출근하듯 정해진 시간에 앉아 정해진 시간까지 "일" 한다. 학부 때나 석사 생때는 반나절만 공부해도 지쳤는데, 사람의 적응력은 놀랍다. 이렇게 쉬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니.

 

글을 쓰는 행위의 특성상, 머리를 계속 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보다 플로우에 더 쉽게 빠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유명 작가들의 업무 스타일을 살펴보면 한자리에서 수시간을 집필하는 경우가 꽤 많다) 

 

나름의 업무 시간을 정한 이유가 있다. 외부 데드라인이 없는 일의 성격상, 시간을 정해놓고 아웃풋을 내지 않으면, 영원히 박사를 졸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데드라인은 타인이 부여하는 데드라인에 비해 힘이 턱없이 부족하다. 계속해서 밀린다. 매일 소모적인 자아와의 협상을 멈추고, "건강한 성인들이 모두 그렇듯, 난 회사일을 하는 거야"라고 최면을 건다. 회사에서 누가 "아 저 15분만 쉬고 시작할게요" "오늘은 영 휠(feel)이 안 오네요 하루 쉬도록 하죠"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시작하는 거다. 월요병을 안고 출근하는 거다. 나도 그렇다. 최면이 완벽하진 않지만 효과가 있다. 오늘만 오늘만 하다가. 결국은 박사모를 쓰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논문 과정에 처음 들어왔을 때 주어진 이 지나친 자유함을 어떻게 다룰지 몰랐다. 4-5개월은 미루기만 했다. 그 시간만 없었다면 지금쯤 졸업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왜 늘 문제가 발생해야 갱생하는가. 물론 풀타임 같은 파트타임 일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심각했던 것 같다. (일하면서 박사하시는 분들 존경한다) 

 

돌이켜보면, 외부 데드라인이 있던 시절이 더 쉬웠다. 당시는 퍽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모든 일을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신을 다잡는 일이 더 고된 훈련이다. 진정한 셀프컨트롤의 싸움은 셀프와 나 단둘이 있을 때 가장 격렬하다. 

 

일은 사이사이 뇌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잡무들이 섞여 있고, 업무 내용들이 바뀌기 때문에 8시간 일, 할만했었다. 하다못해 상의를 하러 가거나, 서류를 제출하거나, 무언가를 함께 가지러 가거나 하는 사이사이 빈시간들이 퍽 많다. 그런 환기의 시간이 틈틈이 휴식을 준다. 논문은 좀 다르다. 논문을 8시간 쓰고 나면 온몸에 진액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쓰는 내내 100% 생각에 몰두해야 하고, 챙기고 판단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생명을 조금씩 갈아서 논문에 뿌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 짓을 벌써 거의 6년째 하고 있다니. 졸업만이 답이다. 

 

아무리 쉬어도 의식의 양 어깨에는 늘 논문의 모래주머니가 가득 쌓여 있다. 이 원수와 작별하는 건 역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졸업뿐이다. 자유할 그날을 꿈꾸고 그리며.

 

오늘도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