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독신이 불완전한건 아니다
현대교회는 나이 든 싱글 남녀들을 대하는 것이 아직 서툴다. 역사적으로 이만큼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인구의 비율이 높았던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들은 주류가 되었던 적이 없기에 시스템이나 대처가 미흡했어도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만혼의 싱글들을 위한 적절한 결혼 신학과 교회 내의 제도적 변화들이 필요해지고 있다.
한국만 살펴봐도 2021년 전체 인구의 31%가 1인 가구이며 서울 경기지역은 40%가 넘는다. 뉴욕은 이미 2009년 기준 맨하탄 인구의 절반이 독신 가정을 이루고 있다. 이웃나라인 캐나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캐나다 주요 도시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밴쿠버도 2016년 census기준, 독신 가구가 46%나 된다. 언제 이렇게 독신 인구가 많아졌나 싶다. 여타 메이저 도시들도 빠른 속도로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0년간의 통계를 살펴봐도 이 흐름은 가속화됐다면 가속화되었지 늦춰지지는 않을 기세다.
이는 대도시만의 패턴이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2050년이 되면 지구 상의 약 90% 인구가 각 나라의 주요 도시에 밀집되어 살게 될 것이라 학자들은 예측하기 때문에, 대도시의 패턴은 전 인구의 패턴을 대변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미 지금도 미국 인구의 83%는 대도시에 몰려 있다.
가정이라는 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는 가족중심적이고 가족을 꾸리는 것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미 여러 경제, 문화적 이유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다수의 나이 든 독신들에게 그들이 지금 어딘가 불완전한 상태라는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이기적인 이유로 결혼을 스스로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시기에 만혼의 독신으로 살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기에, 주어진 시간을 유익하고 거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목양하고, 상담하고, 교육해야 한다. 아직은 교회들이 이런 니즈들이 없었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구조적으로도 청년 아니면 장년으로만 단순하게 구분되어 있는 교회가 아직 여전히 많다. 이는 교회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너는 어딘가 소속되기에는 애매한 상태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일 수 있다. 청년이라 부르기엔 너무 어른이고, 장년부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공동체적인 지지가 부족하다. 가정이 없고 아이가 없으면 장년부에 올라간다 한들 함께 마음을 나눌 이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붕떠서 애매하게 오도 가도 못하다가 이러느니 결혼을 빨리 해야겠다며 압박 속에 결혼하게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결혼을 하는 것도 복되고 좋겠으나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만혼의 싱글들이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각자 주어진 시기와 때를 살고 있을 뿐이다. 에베소서 5장의 말씀처럼, 이 땅에서의 결혼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우리의 관계를 불완전하게 보이는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 불완전한 것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더 불완전해지지 않는다. 이 땅에서의 결혼을 마치 완성행 열차로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는 기혼자들이 훨씬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남편과 완벽한 아내가 내 삶에 헛헛함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예수가 우리를 채우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이 땅에서 불완전한 결혼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모형이 아닌 완전한 것을 얻게 된다.
이미 사회 문화적으로 만혼의 독신들이 우르르 증가하고 있다면, 그들이 어딘가 반쪽짜리 미완성의 청년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게 올바른 신학을 심어주고, 독신의 때에만 할 수 있는 주님을 향한 더 집중된 헌신과 세계 복음화의 특별한 위치를 잡아주는 것이 좋겠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서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크리스천은 완전한 때를 기다리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고 "주어진" 곳에서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서는 사람들이다. 믿음과 결합한 오늘의 최선이 모일때 하나님은 그곳에 섭리의 물길을 내신다. 만혼나이의 독신이라는 상황도 동일하다. 난 언제 결혼하지 한탄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회적 주류이자 독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만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교회가 뒤에서 든든하게 지지해 주는 그때가 빨리 오기를 바란다.